박 수환의 <운율>(Cadence)
박 수환의 <운율>(Cadence)
일본과 프랑스에서 음악(작곡)과 조형 예술을 공부한 박 수환은 이번 전시 주제에서도 이미 드러나듯, 음악적 시간성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인터 텍스츄얼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는 음악적 리듬과 시간성이 사진이라는 순간성과 만날 때, 즉 파라독스하게도 어느 한 순간을 절단, 화석화시키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수성과 충돌하면서, 청각과 시각의 혼합에 의한 또 다른 그 어떤 세계를 연출한다 할 수 있을 것 이다.
이는 어쩌면 사진과 영화 사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터인데, 사진이 순간의 표출이라면, 영화는 시간 이미지(운동을 통해 간접적 시간을 드러내건, 혹은 들뢰즈식 현대 영화의 “시간-이미지“처럼 시간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건), 결국에는 지속(durée)의 개념과 사실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지속 개념의 사진에로의 적용, 말하자면 지속이라는 공감각의 표현이란 결국 대상의 운동에 의한 병치(juxtaposition) 혹은 중첩(superposition)이미지로 표현되어질 이미지의 공존(coexistence)과 혼합에 대한 것 이다. 박 수환의 사진에서 대상의 공존이란 진동(vibration)의 형태로 드러나게 되며, 이는 흐린 이미지(l’image floue)로 표현되어져 대상이 해체(déconstruction)되어지는 과정, 즉 결국 사진이 추상에로 이르게 되는 그 어떤 프로세스를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 이다.
또한 이러한 공감각적 표현은 하나의 공간을 경험한다는 것이 시각 뿐 만이 아니라, 청각, 촉각등의 여러 다양한 마티에르를 함께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경험한다는 것이 이렇듯 신체적 만남이라는 현상학적 프로세스도 함께 포함된다는 것 인데, 현대 미술에서 일상의 오브제가 대두되듯, 현대 음악에서의 일상의 소음도 이렇듯 현대 도시 환경속에서의 속도와 불협화음들이 빚어내는 음색들로 구성된 리듬, 대기 효과와 함께 경험되어져야 한다는 것 이다.
이렇듯 복합적 요인들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걸러져 나오는 최종물로서 드러내고자 하는 박 수환의 작품은 결국 “본다”라는 시각성에 볼 수 없음이라는 “눈멈”으로서의 경험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할 수 있겠다. 이는 마치 푸루스트의 기억에서처럼 시각외의 또 다른 감각을 통해 기억 저편에로의 이동이 가능한 것 처럼, 박 수환의 사진 또한 시각외의 또 다른 감각의 발견을 관객에게 요구한다 할 수 있을 것 이다.
이번 문화원 전시는 대략 이러한 개념하에 두 가지 소주제, 첫째, 건축적 도시 환경을 시간속에서 경험하는 방식과 둘째, 이의 추상에로 이르는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두 섹션으로 구성되어질 것 이다. 사실상 이 두 부분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 시간에 의해 해체, 소멸되는 엔트로피(entropie)적 과정처럼, 추상의 단계에 이르게 됨을 보여준다. 마치 안토니오니 영화, <확대>(Blow Up)에서 대상을 더 잘 보고자 가까이 감으로서 다다르게 되는 대상의 해체, 사라짐(disparition)으로서의 존재처럼 시간에 의해 사라지는 대상의 본질을 메타포한다 할 수 있을 것 이다.
첫 번째군에 속하는 작품들은 작가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경험하는 장소, 즉 오늘날의 도시 환경이란 결국 포스트 모던 소비 사회라는 시뮬라크르가 지배하는 거대한 매트릭스임을 상징하듯이, 광고물들로 뒤덮인 건축물들의 병치 공간이 그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마치 제니 홀저의 전광판 작품을 상기시키듯, 기호로서의 이미지라는 소비 사회의 표면으로서의 오늘날의 일상적 환경을 제시하며, 이는 특히 지속이라는 시간성의 도입에 의해 창출되는 효과라고도 볼 수 있는 부유하는 대상들에 의한 무중력적 공간으로 표현되어진다.
두 번째군의 작품들은 이러한 지속의 증가에 의한 시간 그 자체 이미지, 즉 들뢰즈에 의한다면 직접적 시간이라는 시간-이미지의 출몰을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 이다. 이는 운동에 의해 가리워진 시간이 아니라, 아예 시간의 직접적인 드러남이 보여주는 대상의 운동-정지 사이까지 포함하는 박 수환의 사진이 어떻게 부동을 통한 운동으로 형상화될 수 있는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 이다.
김 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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